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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년 고택에서 느껴보는 선비문화와 정신

재상(宰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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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옥연정사
댓글 7건 조회 28,555회 작성일 20-07-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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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宰相)의 향기

 

종종 여행을 함께 다니던 후배와 최근 안동에 다녀왔다. 하회 마을과 그 주변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의 자취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하회 마을이 처음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논 한 마지기 가득 피어있는 연꽃이 흰 봉오리의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반겼다, 토담 벽 아래 가지런히 핀 백일홍도 정겨웠다. 오롯이 한옥과 초가집만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만 없었으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왔나, 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불쑥 불쑥 나타나는 전동카트들이었다. 이런 마을은 당연히 걸어서 다녀야 하지 않을까?

잘 보존된 풍산 류씨 마을에 단번에 반했다. 다만 이런 고을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남아 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속에 솟아오르며, 잦은 외세 침략과 동족 전쟁으로 허다하게 스러진 고궁, 고풍스런 마을을 생각했다. 이 조용한 마을도 영국 여왕이 다녀간 후로 명소로 부상해서 더욱 소란스러워졌음이 안쓰러웠다. 우리도 관광객으로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마을을 곧장 가로질러 만송정이라 불리는 소나무 숲 가장자리에 다다랐다. 섶다리를 건널 수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이다. 나룻배 대신 최근에 놓인 예쁜 다리를 건너면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한밤 묵을 옥연정사가 있다.

화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다가 반대방향으로 바뀌는 옥소(玉沼)의 남쪽에 있다고, 소(沼)의 맑고 푸른 물빛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다리를 건널 수가 없어서, 부용대 기슭에 살짝 보이는 기와지붕을 확인만 하고, 연안 표지판에 새겨진 남옹 류건춘의 「하회구곡」 시를 음미했다.

 

‘백 길의 부용대가 옥처럼 맑은 물에 비치니/ 푸른 절벽 끊어진 곳에 물소리가 요란하네/ 나루 입구에서 맞이하고 돌아갈 때 전송하니/ 육곡이라 능파대에서 뱃노래가 들리는구나’ <제 6곡 옥연>

 

지금은 얕은 강물이 잔잔히 흐를 뿐이어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휘돌아 나갔던 깊은 물길이며 뱃노래가 그리웠다.

하회마을 입구로 다시 빠져나와 멀리 돌아서 옥연정사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하던 청년이, “저는 서애 류성룡의 16대 손입니다”며 자신을 소개해서 깜짝 놀랐다. 사백년 수령(樹齡)의 소나무가 바라다 보이는 별당 채에 여장을 풀었다.

초저녁에는 강줄기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욱 어두워지니 만삭이 가까운 둥근 달이 강 저편에서 뚜렷이 떠올라, 조용히 강물에 비친 달빛과 병풍처럼 둘러있는 산 그림자가 고택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애오헌이라 이름 하는 마루에 앉아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화산 혹은 병산 자락의 회색 봉우리들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편안한 온돌식 침구에 몸을 누이니, 『징비록』 산실에서의 하룻밤이라 마음이 설렜다. 창호지 바른 창문의 동그라미 문고리도 몇 백 년 전 재상이 손수 잠그던 것이었을 테니까. 한편 선생의 준엄한 서문이 생각나서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는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한다.”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 을 지은 까닭이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안채의 부엌 옆 작은 방에 차려져 있었다. 젊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맛있게 드시라며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EBS 에 나왔던 15대 손(孫) 종부였다. 동안(童顔)이어서 못 알아 뵀는데 영광입니다, 라고 답례하며 명문가가 이어온 정갈한 오첩반상을 들었다. 음료로 나온 국화차에도 노랑 꽃잎에 오랜 세월의 향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서애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병산서원은 복례문 돌계단에서부터 보수 중이었다. 빙 돌아 곁문으로 들어가서 뒤편 강학공간인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았다. 불에 탔던 병산과 불길을 막아낸 낙동강 줄기가 만대루에 가려진 채 시야에 들어왔다. 소문대로 누각의 나무들은 몹시 낡아서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공부하다 지치면 수려한 강산이 바라다 보이는 널찍한 마루에서 머리를 식히며 놀이를 했다니, 옛 유생들은 얼마나 부요했는지! 붉게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쓰다듬으며 누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을 삭혔다.

만대루의 기와를 양 옆에서 가르는 동재와 서재의 맞배지붕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정작 가는 길에 더욱 감동적인 구조물과 마주쳤다. 달팽이 뒷간이라 명명한 옛 일꾼들의 화장실이다. 돌담에 짚 지붕을 씌우고 달팽이 모양으로 연결한, 하늘이 뚫린, 소박하며 귀여운 뒷간이었다.

서애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 마루에서 도복에 갓을 쓴 선비 차림의 두 남자 분을 뵀다. 선생의 14대 손이시라는 두 분은 상형문자 비슷한 전서체의 충효당 현판 글씨를 흥미롭게 풀어 주셨다.

영모각에 들러 선생의 유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영의정으로 임명한다는 선조의 교지와 왕의 친필 서한에서 서체의 멋과 격조가 예사롭지 않았다. 감청색 갓에는 아직까지 서애 선생의 고결함이 배어있는 듯 했다.

나는 선생의 부인에게 내려진 정경부인의 교지를 읽다가, 갑자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한 행사 때 모습이 생각났다. 여왕 앞에서 김치와 고추장을 담구며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던 풍산 류씨 종부와 차종부의 영상이다. 근실한 명문가가 대대로 왕을 맞이하는 모습에, 떠오르는 잠언 구절이 있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2:29)

 

삼칸 초옥에서 생을 마칠 때 후손이 대를 이어 왕 앞에, 대영제국의 왕 앞에 까지 서게 될 줄을 서애 선생은 알지 못했으리라.

마지막에 당도한 원지정사는 좀 외진 곳에 있어서 지나칠 뻔 했다. 서애 선생이 부친상을 당한 후 서재로 쓰려고 지었으며 요양을 한 곳이라고 한다. 단출한 두 칸 방 정자인데 오른쪽에 세워진 연좌루 라는 누각은 위풍당당했다. 씩씩한 기개를 가지고 앞으로는 부용대를 뒤편으로는 온 마을을 거느리며 서 있었다.

뒷마당에 이르니 은은한 꽃향기가 우리를 감쌌다. 잡초 가운데서 여기 저기 군락을 이룬 하얀 들꽃들 향기였다. 담장도 얕고 시야가 트여 멀리 기와집이며 초가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꾸지 않은 널따란 뜰을 호젓이 거닐며, 원지정사야 말로 청렴하면서도 고고했던 재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원지라는 명칭이 어디서 왔을까?

화천 건너 원지 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표지판에는 원지(遠志)가 선생이 평소 마음을 다스리며 정신을 맑게 하려고 즐겨 드시던 약초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식물이라 검색을 해 보니, 원지 뿌리는 잘 놀라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데, 불면, 건망증에 쓰인다고 한다.

‘딱 내게 필요한 약초네, 나도 한번 원지를 달여 먹어봐야지.’

나야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 그렇듯 걱정 병으로 두근거리지만, 남자인 서애 선생은 왜 이 약이 필요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징비록의 절제된 문장에서 비쳐 나오는 선생의 고초 ­ 놀람과 회한과 죄스러움의 마음을…. 임진왜란을 온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막아내고 겪으셨으니, 낙향 후에도 우리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내면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작은 약초가 때때로 평온함을 주어, 식물에 대한 선생의 고마운 마음을 원지정사라는 이름에 담았는지 모른다.

안동을 다녀온 후로 서애 선생을 생각할 때 마다, 야생화 향기가 스치는 듯 하고, 징비(懲毖)를 새기는 비장함과 함께 원지의 치유력인 따뜻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멋진 에세이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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